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염증 = 나쁜 것'이라는 공식을 의심 없이 믿었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찾아오는 비염과 피로감을 보며 "몸속에 염증이 가득 찼나보다"고 생각했고, 그 염증을 없애야 건강해진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 처음부터 틀렸다는 걸 알게 된 건, 의외로 꽤 최근의 일입니다. 몸속 염증을 100% 제거하면 사람이 당장 사망한다는 말, 처음 접했을 때 저도 순간 멈칫했습니다.

착한 염증이란 무엇인가 — 면역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한때 가장 크게 오해했던 부분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면역은 올려야 하고, 염증은 없애야 한다"는 말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는데, 사실 이 두 문장은 서로 모순입니다. 염증 반응 자체가 면역 시스템이 작동한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의 면역은 크게 선천 면역(Innate Immunity)과 후천 면역(Adaptive Immunity)으로 나뉩니다. 선천 면역이란 태어날 때부터 갖추고 있는 즉각적인 방어 체계로, 대식세포와 호중구(Neutrophil)가 대표적인 역할을 맡습니다. 여기서 호중구란 혈액 속을 순환하다가 외부 침입자가 감지되면 혈관벽을 뚫고 나와 병원체와 싸우는 백혈구의 일종입니다. 수명이 하루 이틀에 불과하지만, 적과 싸우다 전사한 호중구의 시체가 모인 것이 바로 우리가 흔히 보는 고름입니다.
반면 후천 면역은 림프구, 특히 B세포와 T세포가 담당합니다. B세포가 생성하는 항체(Antibody)는 특정 병원체를 정밀 타격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며, 주변 조직 손상 없이 해당 병원체만 제거합니다. 이 원리를 응용한 것이 백신입니다(출처: 질병관리청). 즉, 선천 면역이 불을 끄기 위해 물을 쏟아붓는 소방관이라면, 후천 면역은 범인만 정확히 겨냥하는 저격수에 가깝습니다.
환절기마다 생기는 가려움증도 마찬가지입니다. 피부에 존재하는 비만세포(Mast Cell), 즉 피부 조직에 상주하며 외부 자극에 즉각 반응하는 면역 세포가 아주 가볍게 활성화된 결과가 가려움증입니다. 제가 비염과 피부 가려움을 "몸이 망가진 신호"로만 해석했던 것은 완전히 방향이 틀렸던 셈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몸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착한 염증이 나쁜 염증으로 변하는 순간 — 동맥경화와 치매의 공통 원인
문제는 '의도는 착한데 결과가 나빠지는' 상황입니다. 제가 한 달 넘게 노니즙과 고농축 프로폴리스를 챙겨 먹으면서도 피로가 풀리지 않았던 그 시기, 사실 제 몸 안에서는 만성 염증이 서서히 쌓이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뭔가를 제거하려는 데만 집중했지, 왜 그 반응이 반복되는지 원인은 전혀 들여다보지 않았으니까요.
만성 염증(Chronic Inflammation)이란 급성 염증처럼 한 번에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낮은 강도의 염증 반응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면서 장기에 누적 손상을 입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동맥경화증입니다. 고탄수화물 식사로 LDL 콜레스테롤이 과잉 생성되면, 혈관벽의 작은 손상 부위로 LDL이 침투합니다. 혈관 내에 상주하는 대식세포(Macrophage)는 이를 이물질로 인식해 잡아먹으려 하지만, LDL 유입이 반복되면 대식세포가 결국 한계를 넘어 터지고, 그 자리에 콜레스테롤 찌꺼기가 굳어버립니다. 이것이 동맥경화의 핵심 기전입니다(출처: American Heart Association).
치매, 특히 알츠하이머 치매도 같은 맥락입니다. 신경 세포가 활동하면서 생성되는 단백질 찌꺼기 중 잘못 처리된 것을 아밀로이드(Amyloid)라고 합니다. 아밀로이드란 정상적인 단백질 구조 대신 비정상적으로 응집된 아미노산 복합체로, 물에 녹지 않아 뇌 조직에 쌓입니다. 대식세포가 이를 처리하려다 주변 신경 조직까지 손상시키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결국 뇌 기능이 저하되는 것입니다. 선의의 염증 반응이 누적되어 장기 자체를 무너뜨리는 전형적인 패턴입니다.
간도 예외가 아닙니다. 과식으로 간세포가 지방을 과잉 저장하다 터지면, 주변 쿠퍼세포(간 대식세포)가 이를 외부 침입으로 인식해 염증을 일으킵니다. 이 반응이 반복되면 만성 간염 → 간경화 → 간암으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처럼, 몸이 견딜 만하다고 버티는 동안 장기는 조용히 망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 동맥경화: LDL 콜레스테롤 과잉 → 혈관벽 침투 → 대식세포 반복 반응 → 혈관벽 경화
- 알츠하이머 치매: 아밀로이드 축적 → 신경 염증 반응 → 타우 단백질 손상 → 뇌 기능 저하
- 대사성 간질환(MASH): 지방간 → 쿠퍼세포 염증 반응 → 만성 간염 → 간경화
당화혈색소로 내 염증 상태 확인하기 — 영양제보다 먼저 봐야 할 수치
각종 영양제를 하루에 5~6가지씩 챙겨 먹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노니, 타트체리, 고농축 프로폴리스까지. 당시엔 나름대로 꼼꼼하게 고른다고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단 하나도 엄격한 임상 시험(Clinical Trial)을 통해 효능이 검증된 제품이 없었습니다. 임상 시험이란 특정 성분의 약효와 안전성을 인체를 대상으로 단계적으로 검증하는 과학적 절차인데, 국내 건강기능식품은 이 과정 없이도 판매가 가능합니다.
더 큰 문제는 한꺼번에 여러 영양제를 먹을 때 발생하는 약물 상호 작용(DDI, Drug-Drug Interaction)입니다. DDI란 두 가지 이상의 성분이 체내에서 만났을 때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효과가 증폭되거나 부작용이 나타나는 현상을 말합니다. 각각은 안전하더라도 조합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무분별한 병용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 몸의 염증 상태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이 부분에서 저는 당화혈색소(HbA1c) 수치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당화혈색소란 혈액 속 포도당이 적혈구의 헤모글로빈에 결합한 비율을 측정한 값으로, 최근 약 3개월간의 평균 혈당 상태를 반영합니다. 원래는 당뇨 진단 지표로 활용되지만, 만성 염증 상태가 누적될수록 이 수치 역시 함께 올라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5.7% 이하를 정상 범위로 보며, 6.0%를 초과하면 대사 기능에 이상 신호가 켜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6.5% 이상이면 당뇨로 진단되지만, 6.0~6.5% 구간도 방치해선 안 됩니다. 건강 검진 결과에 이 수치가 있음에도 "당뇨는 아니니까"라며 넘기는 경우가 많은데, 저 역시 과거 그런 적이 있습니다. 당화혈색소 수치를 낮추기 위해 식단을 조절하고 체중을 줄이는 것이, 근거 불분명한 영양제 10가지를 복용하는 것보다 훨씬 직접적인 전략이라는 걸 이제는 압니다.
글림프 시스템 — 수면이 염증 관리의 핵심인 이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만성 염증 이야기를 하다가 결론이 "잠을 잘 자라"는 것이었을 때 처음엔 다소 뻔한 말처럼 들렸습니다. 그런데 그 배경에 있는 글림프 시스템(Glymphatic System)이라는 개념을 알고 나서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글림프 시스템이란 뇌 안의 노폐물 청소 체계로, 뇌척수액이 신경교세포(Glial Cell) 사이를 흐르며 신경 활동 중 생성된 대사 찌꺼기를 씻어내는 구조입니다. 이 시스템이 활성화되는 조건은 단 하나, 깊은 수면(Non-REM 3~4단계) 상태입니다. 꿈을 꾸는 렘(REM) 수면이 아니라, 뇌파가 느려지고 의식이 완전히 꺼진 수면 단계에서만 본격적으로 작동합니다. 앞서 언급한 아밀로이드도 이 단계에서 씻겨 나간다는 연구들이 축적되고 있습니다.
쪽잠이나 자주 깨는 수면 패턴에서는 이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 새벽 2~3시에 잠들어 6시간을 자는 것과 밤 11시에 잠들어 7시간 반을 자는 것은 몸이 느끼는 개운함의 차이가 명확합니다. 수면의 질은 시간만으로 결정되지 않고, 얼마나 깊은 단계까지 진입하느냐가 결정적입니다.
또한 염증이 활발히 진행될 때 우리 몸이 열을 내고 기운을 빼앗아 강제로 눕히려 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시상하부가 체온을 38도 이상으로 올리면 호중구의 활성도가 높아지고, 동시에 근육 활동을 억제해 면역 시스템이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합니다. 해열제를 먹고 억지로 출근하면 3일에 나을 감기가 2주로 늘어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몸이 쉬라고 하는 신호를 억누를 때마다 치유의 시간도 함께 늦춰지는 겁니다. 성인의 적정 수면 시간은 하루 7~8시간으로 권고되며, 이보다 짧거나 길어도 건강 지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 보고되어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염증을 없애는 영양제, 정말 효과가 없나요?
A. 엄밀히 말하면 '효과가 없다'가 아니라 '효과가 있다는 임상 시험 근거가 없다'는 표현이 정확합니다. 건강기능식품은 세포 수준의 안전성 데이터만으로도 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에, 인체에서 실제 효능을 검증한 3상 임상 시험을 거친 제품은 극히 드뭅니다. 꼭 필요한 한두 가지를 선별해서 먹는 것은 괜찮지만, 여러 성분을 동시에 복용하면 약물 상호 작용(DDI) 위험이 생깁니다.
Q. 당화혈색소 수치가 6.1%인데 당뇨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냥 두어도 되나요?
A. 6.0%를 초과한 수치는 당뇨 진단 기준(6.5%)에는 못 미치지만, 대사 기능에 이상 신호가 켜진 상태로 볼 수 있습니다. 이 구간에서는 식이 조절과 체중 관리만으로도 수치를 5%대로 되돌릴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검진 결과를 받고 "당뇨는 아니니까"라며 넘기지 말고, 이 수치가 만성 염증 누적의 신호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는 것이 좋습니다.
Q. 디톡스 주스나 단식으로 몸속 염증을 씻어낼 수 있나요?
A. 의학적으로 '디톡스'라는 개념 자체가 정립된 치료 범주에 속하지 않습니다. 우리 몸은 간과 신장이 이미 노폐물 처리를 담당하고 있으며, 별도의 '씻어내기'가 필요한 상황은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극단적인 단식이나 불균형한 식이는 오히려 영양 결핍을 초래해 면역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단기간의 식단 개선이 몸 상태 향상으로 느껴지는 것은 전반적인 생활 습관 개선의 효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Q. 잠을 7시간 넘게 자는데도 피곤한 이유가 뭔가요?
A. 수면 시간보다 수면의 질, 특히 깊은 수면(Non-REM 3~4단계) 진입 여부가 핵심입니다. 자주 깨거나 꿈을 많이 꾸는 얕은 수면이 반복되면 글림프 시스템이 충분히 활성화되지 못해 뇌 노폐물이 누적될 수 있습니다. 수면 중 각성 횟수가 많다면 수면무호흡증이나 스트레스 호르몬 과잉 등을 확인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결론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염증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으로 보냈던 수년간보다, 염증이 왜 생기는지를 이해하고 나서 보낸 몇 달이 훨씬 더 몸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다줬습니다. 아침마다 소금물을 마시고 영양제를 줄 세우던 루틴을 내려놓고, 밤 11시 이전에 잠드는 습관을 들이고 당화혈색소 수치를 주기적으로 확인하기 시작했습니다.
염증은 적이 아닙니다. 몸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가동하는 정교한 시스템의 흔적입니다. 그 시스템이 과부하 없이 잘 작동하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진짜 건강 관리입니다. 당화혈색소 수치를 한번 확인해 보는 것, 그리고 오늘 밤 조금 더 일찍 불을 끄는 것, 그 작은 시작이 지금 당장 해볼 수 있는 가장 근거 있는 선택입니다.